지금까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세 편의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세 편의 글들은 모두 인간 합리성의 한계 내지는 편파성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비합리적이며, 따라서 이를 체계적으로 교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자들의 입장과 정 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완벽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합리적이다ㅡ이런 입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과, 앞서의 입장을 취하는 연구자들 사이에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합리성'의 개념입니다. 어떤 분이 댓글로도 지적해 주셨는데, 합리성이라는 말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인간 행동을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사실상 결정적이라고 봐도 되겠죠.)따라서 이번에는 이와 관련하여 '생태적 합리성'(ecological rationality)라는 개념에 대해 언급하려 합니다.
대체 언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 그것은 '목표'와 관련된 질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주어진 목표를 적절히 달성할 때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목표와 관련하여 연구자들의 의견이 엇갈립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견해, 즉 인간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며 비논리적이라고 보는 견해에서는 그 기준을 '논리'와 '확률'에 둡니다. 즉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논리적, 수학적 규범을 따를 때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기준은 '이성적'이라고 바꿔 불러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는 형식논리와 확률의 규범을 어기는 심리 또는 마음을 '비합리적'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린다 문제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확률론에 따르면 곱사건의 확률은 각각의 사건의 확률보다 높을 수 없는데, 사람들은 곱사건의 확률을 더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확률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며, 따라서 비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뭐 대략 이런 뇌가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뇌 속의 사진은 확률론의 기본인 베이즈정리를 발견한 베이즈 목사.
이와 비슷한 문제로 '아시아 질병 문제'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던 어떤 전염병이 우리 나라(미국)으로 들어왔다. 600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는데, A라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이 중 200명은 확실히 살릴 수 있고 나머지는 반드시 죽게 된다. 한편 B라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1/3의 확률로 모두를 살릴 수 있지만 2/3의 확률로 아무도 살지 못한다. 당신이 정책 입안자라면 어떤 치료법을 사용하겠는가?"
이 문제에서 A와 B 치료법의 생존자 기대값은 같습니다(200명).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A를 선택합니다. 이는 확률의 법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또 다른 약간 각색된 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던 어떤 전염병이 우리 나라(미국)으로 들어왔다. 600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는데, A라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이 중 400명은 확실히 죽고 나머지는 살게 된다. 한편 B라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1/3의 확률로 모두를 살릴 수 있지만 2/3의 확률로 전원이 사망하게 된다. 당신이 정책 입안자라면 어떤 치료법을 사용하겠는가?"
사실 두 번째 버전은 첫 번째 버전에서 말장난을 친 것입니다. 첫 번째 버전은 '산다' 를 강조한 것이고 두 번째 버전은 '죽는다'를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말장난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버전에 대해 사람들은 대다수가 B 치료법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선호는 확실히 확률론만을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으며 따라서 비합리적인 것입니다.
뭐 대략 이런거라고 할 수 있죠.
이와 달리 인간 행동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합리성을 다르게 정의합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환경에 적응되었을 때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ecological rationality). 합리성을 이렇게 정의하는 사람들은 특히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강조합니다. 환경의 제약, 그리고 인간 뇌의 능력을 고려할 때 무한정의 합리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합리성은 제한된 자원(사고능력, 기억능력, 시간 등)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이들의 관점에서 위와 같은 사례들은 합리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런 문제들은 어떤 사람이 환경에 얼마나 적응했는지와 사실 별 상관이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확률 계산 같은거 잘 못해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렇게 모든 사안에 대해 인지적 자원을 최대한 투자하여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부적응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작업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우리가 얻는 것은 사실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종류의 간편한 계산법(heuristics)을 사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마음이 합리적(adaptive toolbox)이라고 보는 것이 이러한 연구자들의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쫓아오는 사자의 앞에서 가능한 모든 대안에 대해 사려깊게 생각하는 얼룩말은 사자밥이 됩니다.
자, 이제 앞의 포스팅들에서 나왔던 문제를 잘 풀지 못하셨던 분들도 스스로에게 지우셨던 '비합리성'의 짐을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생태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그런 문제들은 환경에 대한 적응과 별 관련이 없으니 말입니다. 사실 인간은 그런 것보다는 다른 작업들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말입니다. 현존하는 어떤 슈퍼컴퓨터도 인간만큼 얼굴인식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얼굴인식은 사실 굉장히 복잡한 통계적 절차입니다. 이 뿐 아니라 3차원 공간상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 뿐 아니라 걷기도 아직 로봇이 잘 못하지만 인간은 완벽하게 잘 하는 작업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고도로 수학적 연산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말입니다(아무리 계산을 간편하게 만든다고 해도). 다시 말해 인간은 쓸데없는 작업에는 신경쓰지 않고 꼭 필요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작업에는 고도의 계산능력을 발전(진화)시켜 온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은 생태적으로 '합리적'입니다. 최소한의 계산적 '비용' 을 들여서 최대한의 '효율'(생존과 번식)을 내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지적 구두쇠 현상(cognitive miser)도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인지적 자원을 들여서 해결하려 하는 심리적 성향이야말로 비용 대 투자의 비율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의 산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의는 인간이 대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상당히 어렵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란은 합리성의 개념 정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전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심리학에 대해 알아보아요!
대체 언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 그것은 '목표'와 관련된 질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주어진 목표를 적절히 달성할 때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목표와 관련하여 연구자들의 의견이 엇갈립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견해, 즉 인간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며 비논리적이라고 보는 견해에서는 그 기준을 '논리'와 '확률'에 둡니다. 즉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논리적, 수학적 규범을 따를 때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기준은 '이성적'이라고 바꿔 불러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는 형식논리와 확률의 규범을 어기는 심리 또는 마음을 '비합리적'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린다 문제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확률론에 따르면 곱사건의 확률은 각각의 사건의 확률보다 높을 수 없는데, 사람들은 곱사건의 확률을 더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확률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며, 따라서 비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뭐 대략 이런 뇌가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뇌 속의 사진은 확률론의 기본인 베이즈정리를 발견한 베이즈 목사.
이와 비슷한 문제로 '아시아 질병 문제'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던 어떤 전염병이 우리 나라(미국)으로 들어왔다. 600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는데, A라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이 중 200명은 확실히 살릴 수 있고 나머지는 반드시 죽게 된다. 한편 B라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1/3의 확률로 모두를 살릴 수 있지만 2/3의 확률로 아무도 살지 못한다. 당신이 정책 입안자라면 어떤 치료법을 사용하겠는가?"
이 문제에서 A와 B 치료법의 생존자 기대값은 같습니다(200명).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A를 선택합니다. 이는 확률의 법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또 다른 약간 각색된 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던 어떤 전염병이 우리 나라(미국)으로 들어왔다. 600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는데, A라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이 중 400명은 확실히 죽고 나머지는 살게 된다. 한편 B라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1/3의 확률로 모두를 살릴 수 있지만 2/3의 확률로 전원이 사망하게 된다. 당신이 정책 입안자라면 어떤 치료법을 사용하겠는가?"
사실 두 번째 버전은 첫 번째 버전에서 말장난을 친 것입니다. 첫 번째 버전은 '산다' 를 강조한 것이고 두 번째 버전은 '죽는다'를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말장난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버전에 대해 사람들은 대다수가 B 치료법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선호는 확실히 확률론만을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으며 따라서 비합리적인 것입니다.

이와 달리 인간 행동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합리성을 다르게 정의합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환경에 적응되었을 때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ecological rationality). 합리성을 이렇게 정의하는 사람들은 특히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강조합니다. 환경의 제약, 그리고 인간 뇌의 능력을 고려할 때 무한정의 합리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합리성은 제한된 자원(사고능력, 기억능력, 시간 등)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이들의 관점에서 위와 같은 사례들은 합리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런 문제들은 어떤 사람이 환경에 얼마나 적응했는지와 사실 별 상관이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확률 계산 같은거 잘 못해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렇게 모든 사안에 대해 인지적 자원을 최대한 투자하여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부적응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작업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우리가 얻는 것은 사실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종류의 간편한 계산법(heuristics)을 사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마음이 합리적(adaptive toolbox)이라고 보는 것이 이러한 연구자들의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자, 이제 앞의 포스팅들에서 나왔던 문제를 잘 풀지 못하셨던 분들도 스스로에게 지우셨던 '비합리성'의 짐을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생태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그런 문제들은 환경에 대한 적응과 별 관련이 없으니 말입니다. 사실 인간은 그런 것보다는 다른 작업들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말입니다. 현존하는 어떤 슈퍼컴퓨터도 인간만큼 얼굴인식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얼굴인식은 사실 굉장히 복잡한 통계적 절차입니다. 이 뿐 아니라 3차원 공간상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 뿐 아니라 걷기도 아직 로봇이 잘 못하지만 인간은 완벽하게 잘 하는 작업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고도로 수학적 연산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말입니다(아무리 계산을 간편하게 만든다고 해도). 다시 말해 인간은 쓸데없는 작업에는 신경쓰지 않고 꼭 필요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작업에는 고도의 계산능력을 발전(진화)시켜 온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은 생태적으로 '합리적'입니다. 최소한의 계산적 '비용' 을 들여서 최대한의 '효율'(생존과 번식)을 내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지적 구두쇠 현상(cognitive miser)도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인지적 자원을 들여서 해결하려 하는 심리적 성향이야말로 비용 대 투자의 비율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의 산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의는 인간이 대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상당히 어렵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란은 합리성의 개념 정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전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심리학에 대해 알아보아요!




덧글
은빛겨울 2011/10/24 23:38 # 삭제 답글
어찌어찌 하여 들렀다가 좋은 연재물 접하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JDM 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입장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적응적 도구상자 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생각난 김에, 초면에 죄송하지만 질문 하나만 드려봅니다.
인간의 합리성의 제약조건이 완화되어, 이전보다 더 합리적인 대안의 선택이 가능해졌을 때,
이미 제한된 합리성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고수하는지,
아니면 더 합리적인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갈아타는지(?) 입니다.
기거렌처가 로봇의 결혼 비유를 들면서 제한된 합리성을 설명할 때,
제 기억이 맞다면 "애착"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일단 한번 의사결정을 끝낸 주제에는 자신의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해
애착이 작용하면서 기존의 입장을 다시 바꾸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견해라고 할 수 있는지요 ?
표현이나 요지가 애매하다면 죄송합니다. 아직 학부생의 지식수준이라 그렇습니다.
( 심리학은 아니고, 나름........?? 인접학문입니다 ;;; )
갑작스런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xenard 2012/02/08 04:49 # 삭제 답글
심리학 관련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컴퓨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인간의 사고를 연구하는(이런게 인지심리학인가..) 글들은 영감을 자극하는 훌륭한 데이터인것 같습니다.
인간이 두발로 걷는 것을 시뮬레이션 하는 로봇이라던가, 얼굴을 컴퓨터가 인식하게 하는 패턴인식에서는
매우 복잡한 수학적 지식들을 사용하죠.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의 능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항상 드는 생각이, 과연 인간이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때 수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계산을 하고 행동할까? 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것 같지가 않은데..
우리는 그냥 대충, 직관적으로 쓰윽 해버리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